기장시장을 지나 나지막한 언덕을 조금만 넘어가면 거짓말처럼 푸른 바다가 눈앞에 차오릅니다. 그곳이 바로 부산 기장의 대표적인 포구, 대변항입니다.
처음 이 이름을 접했을 때, 저는 저도 모르게 실소를 터뜨리고 말았습니다.
"얘들아, 여기 포구 이름이 대변항이래. 소변도 아니고 대변!"
제 말이 끝나기 무섭게 아이들의 눈이 똥그랗게 커지더니, 이내 배꼽을 잡고 자지러지기 시작했습니다.
"아빠, 진짜? 대변항이라고? 어떻게 항구 이름이 똥이야! 아하하!"
길거리 한복판에서 눈물까지 찔끔 흘리며 꺄르르 웃어대는 아이들의 무해하고 천진난만한 모습에, 저 역시 참지 못하고 함께 빵 터지고 말았습니다.
아이들에게는 세상에서 가장 신나고 웃긴 이름의 항구였고, 제게는 아이들의 맑은 웃음소리로 물든 부산 바다와의 잊지 못할 첫 만남이 시작되는 순간이었습니다.
하지만 시간이 지나며 비로소 알게 되었습니다. 대변항은 톡 튀는 이름 때문에 기억되는 곳이 아니라, 그 바다를 터전 삼아 살아가는 사람들의 진득한 삶 때문에 가슴 깊이 남는 곳이라는 것을 말입니다.

바다와 멀었던 사람이 바다의 향을 사랑하게 되기까지
저는 충청도의 조용한 마을에서 태어나 파주의 시골길을 걸으며 자랐습니다. 제 유년의 기억 속에는 바다보다는 흙먼지 날리는 논밭과 들판이 더 익숙했습니다. 성인이 된 후에도 서울과 경기도, 그리고 멀리 필리핀에서의 시간을 보냈기에 '바다'는 늘 낯선 이방의 공간이었습니다.
그래서 처음 기장에 내려왔을 때, 항구가 품고 있는 독특한 냄새는 제게 작은 충격이었습니다. 대변항에 들어서는 순간 밀려오는 짠 내와 묵직한 생선 비린내. 솔직히 말해 처음엔 코를 찡그릴 만큼 익숙해지기 힘들었습니다.
"사람의 마음이란 참 신기하지요. 매일 보고, 매일 숨 쉬다 보면 낯선 것들이 삶의 일부로 스며듭니다."
어느 순간부터 그 진한 바다 향이 싫지 않았습니다. 오히려 차 창문을 열었을 때 그 냄새가 밀려오면 "아, 내가 드디어 기장에 왔구나" 하고 반갑게 인사를 건네게 되더군요. 지금은 충북 음성에 살며 그 짠 내음이 아련하게 그리워집니다.
가장 낯설고 거북했던 것이 시간이 지나면 가장 소중하고 그리운 추억이 된다는 진리를, 저는 대변항의 바람 속에서 배웠습니다.

5월의 대변항, 은빛 멸치 떼와 사람들의 웃음소리로 춤추다
기장에서 살던 시절, 5월이 오면 대변항은 평소의 조용한 포구와는 완전히 다른 세상으로 변신했습니다. 바로 기장의 대표 축제인 '기장 멸치축제'가 열리는 시기였기 때문입니다.
전국 각지에서 모여든 사람들로 항구 주변은 발 디딜 틈조차 없었습니다. 거리는 맛있는 냄새와 사람들의 흥겨운 웃음소리로 가득 차올랐지요.
아이들만 신난 것이 아니었습니다. 평소 정적인 삶을 살던 저 역시 축제의 분위기에 취해 아이처럼 들떠 있었습니다. 바다와 사람이 하나가 되어 만들어내는 그 폭발적인 에너지는 일상에 지친 우리 가족에게 큰 생기를 불어넣어 주었습니다.

배 위에서 쏟아지던 은빛 빗방울, 그 숭고한 땀방울
그날 축제에서 제 평생 잊지 못할 압권의 장면을 목격했습니다. 바로 어부들이 배 위에서 멸치를 털어내는 모습이었습니다.
항구에 정박한 배 위에서 억센 손마디의 어부들이 박자에 맞춰 쉴 새 없이 그물을 털어냈습니다.
그 순간, 봄 햇살을 받은 멸치들이 마치 은빛 보석 가루처럼, 혹은 바다에서 솟구치는 은빛 빗방울처럼 공중으로 흩뿌려지며 쏟아져 내렸습니다.
"와! 아빠, 저것 좀 보세요! 바다에서 물고기가 쏟아져요!"
아이들은 방파제 위에서 펄쩍펄쩍 뛰며 환호성을 질렀고, 주변을 둘러싼 구경꾼들 모두 입을 벌린 채 감탄을 금치 못했습니다. 누구 하나 발걸음을 옮기지 못하고 그 장엄한 삶의 현장을 넋을 놓고 바라보았습니다.
어부들의 온몸은 이미 비늘과 땀방울로 범벅이 되어 있었습니다. 고된 노동이었지만, 그들의 얼굴에는 자신이 잡아온 바다의 결실에 대한 깊은 자부심과 미소가 감돌고 있었습니다. 그 땀방울을 보며 깨달았습니다.
"바다는 그저 물고기를 낚는 장소가 아니구나. 사람에게 삶의 터전을 내어주고, 이웃과 이웃의 마음을 엮어주는 거대한 생명의 장이구나."

"아빠, 우리도 비닐봉지 가져올 걸!" 떨어지는 멸치에 담긴 정(情)
그물을 격렬하게 털다 보면 배 밖으로 튕겨 나가는 멸치들이 꽤 있었습니다. 그러면 어김없이 아주머니들이 비닐봉지를 들고 나타나 바닥에 떨어진 멸치들을 신나게 담기 시작하셨습니다.
한두 마리가 아니었습니다. 금세 봉지가 묵직해질 만큼 가득 담아가시는데, 옆에서 구경하던 우리 아이들이 제 옷자락을 잡아당기며 소곤거렸습니다.
"아빠, 우리도 비닐봉지 챙겨올 걸 그랬어! 저 아줌마 봉지 엄청 뚱뚱해졌어!"
아이들의 귀여운 아쉬움에 또 한 번 웃음이 터졌지만, 바닥에 떨어진 멸치를 주워 담는 아주머니들의 모습은 결코 탐욕스러워 보이지 않았습니다. 그것은 바다가 거두어 준 넉넉함을 감사히 나누어 가지는 바닷가 사람들의 정겨운 이삭줍기였습니다.
서로 눈이 마주치면 실없이 웃어주고, 좋은 자리를 양보하며 나누는 정겨운 대화 속에서 저는 잊고 살았던 진한 '사람 냄새'를 맡았습니다.

처음 맛본 멸치회, 혀 끝에 남은 바다의 선물
축제에 왔으니 먹거리를 빼놓을 수 없겠지요. 그날 저는 인생 처음으로 '멸치회'라는 음식을 접했습니다.
충청도 내륙에서 나고 자란 저에게 "멸치를 국물 용이나 볶음용이 아닌, 회로 먹는다"는 것은 상상도 못 할 일이었습니다. 약간의 망설임 끝에 젓가락을 들어 양념에 무쳐진 멸치회 한 점을 입에 넣었습니다.
"아, 멸치가 이렇게 부드럽고 고소할 수 있다니!"
비린 맛은 전혀 없이 혀 끝에 감도는 싱싱한 식감과 고소한 풍미! 기장에 살지 않았더라면 제 평생 몰랐을 천상의 맛이었습니다. 지금도 누군가 부산 기장을 이야기하면, 제 입안에는 그때 먹었던 상큼하고 고소한 멸치회의 추억이 침으로 괴곤 합니다.
돌아오는 길, 우리 가족의 손에는 자그마한 멸치젓갈 항아리가 들려 있었습니다.
그 후로 한동안 집에서 밥을 먹을 때마다 멸치젓갈을 식탁에 올렸습니다. 그리고 젓갈을 한 점 얹을 때마다 그날의 대변항 풍경—시원한 바다 바람, 어부들의 땀방울, 아이들의 천진난만한 웃음소리가 다시금 우리 집 식탁 위에 아지랑이처럼 피어올랐습니다.

대변항이 내게 남긴 가장 큰 선물
시간이 흐르고 흘러, 지금 저는 푸른 바다 대신 잔잔한 산자락이 병풍처럼 둘러싼 충북 음성에서 일상을 살아가고 있습니다. 하지만 여전히 누군가 '부산 기장'을 말하면 제 마음은 가장 먼저 대변항의 방파제로 달려갑니다.
처음엔 아이들과 피식 웃었던 유쾌한 이름.
처음엔 코를 막았던 코끝 찡한 생선 냄새.
처음엔 낯설어 머뭇거렸던 멸치회.
그 모든 '처음'의 생경함은 이제 내 삶을 부유하게 해주는 가장 따뜻하고 그리운 추억의 조각들이 되었습니다. 대변항은 저에게 단순히 싱싱한 멸치만을 준 것이 아니었습니다. 가족과 함께 깔깔거리며 걸었던 시간, 바다를 접하며 넓어진 마음, 그리고 세상과 사람을 바라보는 온기 어린 시선을 선물해 주었습니다.
누군가 저에게 기장이 어떤 곳이냐고 묻는다면, 저는 주저 없이 이렇게 답할 것입니다.
"기장은 바다도 없이 아름답지만, 그 바다를 닮은 사람들의 정(情)이 가슴속에 훨씬 더 깊고 오래 남는 곳입니다."
다음 이야기 예고편
기장의 바다는 우리 가족에게 맛있는 음식만을 선물해 준 것이 아니었습니다.
그곳의 따뜻한 공기 속에서 만난 사람들과의 인연 역시 오랜 시간이 지난 지금까지 가슴 깊이 남아 있습니다.
송정으로 넘어가는 길목에서 만난 '어부밥상'의 노릇한 생선구이,
일광 바닷가에서 구수하게 퍼지던 짚불 향 가득한 장어와 꼼장어의 맛,
그리고 세월이 흘러도 이어지고 있는 '가마솥복어집'과 소중한 사람의 인연까지.
다음 편에서는 바다 향에 따스한 정(情)이 얹어진 이야기,
**「기장에서 이어진 사람의 인연, 그리고 잊지 못할 바다의 맛」**으로 찾아뵙겠습니다. 많이 기대해 주세요!
📝 💌 오늘도그로우의 한마디
아이들과 함께 깔깔거리며 대변항을 누비던 때가 그립습니다. 😊
오늘 제 글이 여러분의 마음에도 따뜻한 바다 바람을 안겨드렸기를 바랍니다.
**공감❤️과 따뜻한 댓글💬**은 다음 이야기를 준비하는 데 아주 큰 힘이 됩니다. 들러주셔서 늘 감사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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