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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장이 내게 가르쳐 준 것 2편: 기장시장 입구 오른쪽 첫 번째 건어물집, 미역과 멸치에 담긴 추억

오늘도그로우 2026. 8. 2. 15:36

 

필리핀에서 오랜 봉사와 타향살이를 마치고 한국으로 돌아왔을 때, 저희 가족에게는 새로운 삶의 터전이 필요했습니다. 그렇게 마주하게 된 곳이 바로 부산 기장이었습니다.

 

2003년부터 2008년까지 꼬박 6년을 기장에서 살면서 저는 육지 사람으로서 바다와 밀접하게 호흡하는 삶을 처음으로 경험했습니다. 그리고 그 중심에는 늘 삶의 온기로 가득했던 '기장시장'이 있었습니다.

 

 

1. 걸어서 5분, 우리 가족의 작고 다정한 여행지

당시 저희 가족이 살던 한신아파트에서 기장시장까지는 걸어서 5분 남짓한 거리였습니다. 특별한 주말 계획이 없어도 아이들의 손을 잡고 산책하듯 시장으로 향하곤 했습니다.

 

제게 시장이 정갈한 식재료를 구하는 장소였다면, 어린 아이들에게 기장시장은 매일 새로운 풍경이 펼쳐지는 활기찬 놀이터였습니다. 시끌벅적한 상인들의 소리, 생경한 바다 생물들을 신기하게 둘러보던 아이들의 눈동자, 그리고 시장 어귀에서 김을 모락모락 피워 올리던 떡볶이와 어묵은 주말마다 찾아오는 소소한 행복이었습니다.

 

 

"지금 돌이켜보면 그 시간은 단순히 장을 보러 간 것이 아니었습니다. 낯선 땅에서 가족이 함께 걷고, 먹고, 웃으며 삶의 뿌리를 내려가던 소중한 추억의 조각들이었습니다."

 

아이들과 함께 걷던 정겨운 기장시장 풍경 & 활기찬 시장 골목 전경
아이들과 함께 걷던 정겨운 기장시장 풍경 & 활기찬 시장 골목 전경 /출처:네이버무료이미지

 

2. 입구 오른쪽 첫 번째 건어물 가게와 단골이 된 이유

 

기장시장에 들어서면 수많은 점포 중에서도 제 발걸음이 자연스럽게 향하는 단골집이 있었습니다. 바로 시장 입구 오른쪽 첫 번째에 위치한 건어물 가게였습니다.

 

 

처음에는 그저 동선이 맞아 우연히 들렀지만, 얼마 지나지 않아 그곳은 기장 바다의 진수를 만나는 전초기지가 되었습니다. 가게 앞에는 거친 해풍을 견디며 정성껏 말려진 기장 미역과 다시마, 빛깔 고운 멸치들이 정갈하게 놓여 있었습니다.

 

 

무엇보다 저와 비슷한 또래로 보이던 여사장님의 환한 미소가 기억에 남습니다. 사장님은 미역 한 묶음을 건네실 때마다 늘 정성스러운 목소리로 말씀하셨습니다.

"기장 미역은 파도가 거세서 결이 다릅니다. 드셔보시면 정말 좋을 거예요."

그 말 속에는 단순히 물건을 팔기 위한 상술이 아닌, 자신이 터전 잡은 바다와 식재료에 대한 깊은 자부심이 담겨 있었습니다.

 

정갈하게 건조된 기장 미역 및 다시마, 건어물이 나열된 건어물 가게 전경
정갈하게 건조된 기장 미역 및 다시마, 건어물이 나열된 건어물 가게 전경 /출처:네이버무료이미지

 

3. 타지에 전했던 바다의 진심: 미역과 다시마에 담은 마음

 

건어물집에 들르면 제가 가장 많이 구매했던 것은 단연 기장 미역과 다시마였습니다. 육지 출신인 제게도 놀라움을 주었던 이 훌륭한 바다의 결실을 혼자만 알고 있기엔 너무나 아까웠습니다.

 

타지에 살고 있는 고향 친구들은 물론, 필리핀 생활 시절 아무런 조건 없이 저를 도와주었던 고마운 분들에게 감사의 마음을 담아 미역을 보내곤 했습니다.

 

"좋은 먹거리를 선물한다는 것은 단순히 물질을 전하는 것이 아닙니다. 내가 살아가는 공간에서 느낀 감동과 감사한 마음을 온전히 함께 나누는 일입니다."

 

가끔 사장님께서 "다음에도 좋은 걸로 준비해 둘 테니 또 들러주세요"라며 건네시던 정겨운 인사말은 장사꾼의 멘트라기보다, 정을 주고받는 이웃의 다정한 안부처럼 가슴에 남았습니다.

 

4. 육지 청년이 깨달은 기장 미역의 진짜 가치

 

처음에는 미역이 그저 다 똑같은 미역인 줄로만 알았습니다. 하지만 기장에 살며 바다의 이치를 배워가면서 제 생각은 완전히 달라졌습니다.

좋은 미역은 단순한 식재료가 아니었습니다. 거친 청정 바다에서 자라나, 어부들의 억척스러운 손길을 거치고, 따스한 햇볕과 해풍에 말려지는 '시간과 정성의 결정체'였습니다.

채취의 수고: 거친 파도를 뚫고 바다에 들어가 미역을 거두어 올리는 어부의 땀방울

손질의 정성: 불순물을 씻어내고 해풍에 가장 좋은 결로 말려내는 상인의 정성

기다림의 시간: 자연이 허락한 조건 속에서 최상의 품질이 완성되는 시간

 

미역 한 줌을 식탁에 올리기까지 수많은 사람의 노고가 들어간다는 것을 깨달았을 때, 매일 먹던 미역국 한 그릇이 비로소 숭고하게 다가왔습니다.

 

5. 낯선 사투리 속에서 배운 부산의 따뜻한 정(情)

 

경기도와 서울, 그리고 필리핀에서 오랜 시간을 보냈던 저에게 부산 사투리는 처음엔 낯선 이국어와도 같았습니다. 서울 생활을 오래 했던 아내조차 부산에 내려오니 자연스럽게 사투리가 튀어나오는 모습이 신기하기도 했습니다.

 

 

시장에 들르면 상인들이 주고받는 빠른 말투를 다 이해하지 못해 멍하니 서 있기도 했습니다. 하루는 상인분이 한참을 말씀하시다 "됐다!"라고 한마디 던지셨는데, 무언가 완성되었다는 뜻인지 그만하자는 뜻인지 몰라 혼자 헛웃음을 짓던 기억도 납니다.

 

 

하지만 투박한 경상도 억양 뒤에 숨겨진 정과 따뜻함을 이해하는 데는 그리 오랜 시간이 걸리지 않았습니다. 겉은 무뚝뚝해 보여도 덤으로 미역 한 줄기를 더 얹어주던 그 마음이 바로 부산의 정이었습니다.

 

활기찬 기장시장 상인들의 모습
활기찬 기장시장 상인들의 모습 /출처:네이버무료이미지

 

6. 소소해서 더 행복했던 일상의 풍경들

 

기장시장 지하 수산시장에서 싱싱한 회를 한 팩 사 오던 날은 저희 집의 작은 잔칫날이었습니다. 회를 사고 올라오는 길에는 어김없이 시장 입구의 떡볶이집에 들렀습니다.

 

 

재미있게도 그 떡볶이집 막내딸이 저희 둘째 아들과 초등학교 같은 반 친구였습니다. 자연스럽게 그 집 단골이 되었고, 저희 식탁에는 늘 '싱싱한 바다 회''매콤 달콤한 떡볶이'라는 다소 엉뚱하지만 완벽한 조합이 올라왔습니다.

 

 

"싱싱한 바다의 회와 따뜻한 떡볶이 한 그릇. 지금 생각하면 참 이색적인 차림이었지만, 그 시절 우리 가족에게는 그 무엇과도 바꿀 수 없는 행복한 일상의 한 장면이었습니다."

 

💡 글을 마치며: 추억은 마음의 고향이 된다

 

지금은 부산 기장을 떠나 충북 음성에 자리를 잡고 살아가고 있습니다. 하지만 문득 따스한 바닷바람이 그리워질 때면 가장 먼저 떠오르는 곳은 언제나 기장시장입니다.

 

시장 입구 오른쪽 첫 번째 건어물집, 깊은 미역 향을 함께 고르던 순간들, 아이들과 손을 잡고 떡볶이를 나누어 먹던 그 시절.

기장시장은 저에게 단순히 물건을 사고파는 공간이 아니었습니다. 낯선 터전에서 가족과 함께 새로운 삶을 일구고, 바다가 주는 풍요로움과 사람의 따뜻한 정을 배운 인생의 소중한 학교였습니다.

 

 

 

🌊 [다음 이야기 예고]

기장시장 너머에는 또 다른 푸른 바다가 기다리고 있었습니다. 바로 멸치와 항구의 기상이 살아 숨 쉬는 '대변항'입니다.

처음에는 낯설었던 알싸한 바다 냄새가 어떻게 그리운 향기로 바뀌었는지, 그리고 매년 5월 항구를 은빛으로 물들이던 멸치축제와 생전 처음 맛본 멸치회의 강렬한 기억을 다음 편에서 이야기해 드리겠습니다.

 

👉 [다음 편] 대변항 멸치축제와 기장 바다가 남긴 특별한 추억 (다음 주 연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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