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길에서 만난 사람 1편: 1989년 김포공항에서 바기오까지, 낯선 세상이 건넨 위로

오늘도그로우 2026. 7. 16. 14:09
1980년대 김포공항 외부풍경

 

1980년대 김포공항 내부 사람들이 서성이며 무언가구경하는모습

 

 

1989년 어느 날, 나는 김포공항에 서 있었습니다. 지금처럼 해외여행이 흔했던 시대가 아니었기에, 비행기를 타고 외국으로 간다는 것은 설렘과 동시에 큰 용기가 필요한 일이었습니다.

 

익숙했던 공간을 떠나 새로운 세상으로 향하는 순간, 그때 내가 향한 곳은 필리핀이었습니다.

목적지는 마닐라를 거쳐 바기오였습니다.

 

 

지금 생각해보면 그날 김포공항에서 시작된 작은 출발이 앞으로 내 인생에서 수많은 사람을 만나고, 다양한 경험을 하게 될 긴 여정의 시작이었습니다.

 

마닐라공항, 처음 마주한 낯선 세상

 

 

 

비행기가 마닐라공항에 도착하고 문이 열리는 순간, 가장 먼저 느껴진 것은 풍경이 아니라 바로 공기였습니다.

한국과는 확연히 다른 냄새가 코끝으로 들어왔습니다.

따뜻하고 습한 공기와 낯선 향기 속에서 '아, 정말 다른 나라에 왔구나'라는 실감이 비로소 찾아왔습니다.

 

 

영어로 기본적인 대화는 가능했지만, 처음 경험하는 외국 공항의 분위기는 긴장감을 주기에 충분했습니다. 큰 가방 두 개를 들고 입국 심사대로 향했으나 쉽게 통과할 수 없었습니다.

 

직원은 가방을 열어보라고 요구했고, 결국 가지고 온 짐을 하나씩 모두 꺼내야 했습니다. 낯선 공항 안에서 가방을 열고 물건을 확인받는 동안 머릿속에는 여러 생각이 스쳐 지나갔습니다.

 

 

밖에서는 나를 기다리는 지인이 있을 텐데, 나는 안에서 초조하게 시간을 보내고 있었습니다. 당시 마닐라공항은 지금과 달라 지인이 공항 안으로 들어올 수 없었기에, 나는 오롯이 혼자서 그 순간을 견뎌내야 했습니다.

 

드디어 만난 한 사람

 

짐 검사를 겨우 마치고 입국장을 빠져나왔습니다. 하지만 출구 쪽에는 바리케이드가 쳐져 있어 또 한 번 낯선 광경에 긴장해야 했습니다. 그 바리케이드를 지나 밖으로 나가는 순간, 멀리서 한 사람이 보였습니다.

바로 나를 기다리고 있던 지인 선배였습니다.

 

 

선배는 나를 발견하고 반갑게 손을 흔들고 있었습니다. 그 모습을 보는 순간 얼마나 마음이 놓였는지 모릅니다.

우리는 깊은 안도의 포옹을 나눴습니다. 낯선 나라에서 처음 만난 익숙한 사람, 그 짧은 포옹은 새로운 시작 앞에서 느낀 첫 번째 위로였습니다.

 

지프니를 타고 바기오로 향하다

 

공항을 빠져나온 뒤 우리는 본격적인 이동을 시작했습니다.

 

그런데 내가 필리핀에서 처음 타게 된 차는 일반 승용차가 아닌, 바로 '지프니'였습니다.

화려하게 꾸며진 차체와 여러 사람이 마주 보고 함께 타는 독특한 구조 등 모든 것이 처음 보는 낯선 모습이었습니다.

 

 

하지만 우리의 최종 목적지는 마닐라가 아니었습니다. 공부를 위해 향하는 목적지, 바기오를 향해 나는 그렇게 1989년 필리핀의 밤길 위에 올라섰습니다.

 

처음 만난 필리핀 음식

 

 

 

바기오로 향하는 긴 여정 중 선배는 우리를 한 식당으로 데려갔습니다. "배부터 채워야지" 하며 건넨 선배의 한마디에는 먼 길을 떠나온 후배들을 향한 따뜻한 배려가 담겨 있었습니다. 그곳은 내가 필리핀에서 처음 경험한 식당이었습니다.

 

 

 

처음 나온 음식은 스파게티였지만, 막상 한입 먹어보니 한국에서 먹던 것과는 다른 특유의 향신료 때문에 쉽게 목구멍으로 넘어가지 않았습니다. 낯선 향이 입안 가득 퍼지자 우리는 서로 얼굴만 멀뚱히 쳐다보았습니다.

 

 

그 모습을 본 선배는 껄껄 웃으며 이번에는 필리핀 사람들이 즐겨 먹는 국수 요리인 '판싯(Pancit)'을 주문해 주었습니다.

'이번에는 괜찮겠지' 생각했지만 결과는 마찬가지였습니다.

 

 

 

배는 너무 고팠지만, 나의 입맛은 아직 낯선 이국의 맛을 받아들일 준비가 되어 있지 않았습니다.

그 순간 문득 오래전 기억 하나가 머릿속을 스쳤습니다. 중학교 시절 수학여행으로 경주를 갔을 때의 일입니다. 호텔 식사에서 처음 보는 노란 '카레'가 나왔습니다.

 

 

 

지금은 누구나 즐겨 먹는 대중적인 음식이지만, 당시 시골에서 자란 우리에게 카레는 너무나도 이질적인 음식이었습니다. 친구들 대부분이 카레에는 손도 대지 못하고, 식탁에 있던 깍두기만 집어 먹다 결국 깍두기만 먼저 동이 나버렸습니다.

 

 

그때는 '왜 이런 음식을 먹지?'라고 생각했지만, 시간이 흘러 카레는 우리에게 아주 익숙한 소울푸드가 되었습니다.

 

 

1989년 필리핀 식당에서 판싯을 바라보던 나의 모습도 그때와 다르지 않았습니다. 사람은 누구나 낯선 것을 본능적으로 경계합니다.하지만 시간이 지나 익숙해지면, 그것은 어느새 추억이 되고 삶의 일부가 됩니다. 돌이켜보면 새로운 세상을 받아들이는 일도 음식과 참 비슷합니다.

 

 

처음에는 낯설고 어렵지만, 조금씩 경험을 쌓다 보면 결국 그 문화도, 사람도, 그리고 그 나라까지도 마음 깊숙한 곳에 자연스럽게 자리 잡게 마련입니다.

 

 

캐논 로드에서 만난 첫 번째 고비

 

바기오 올라가는길이 캐논로드인데 중간쯤에 있는 사자상

 

바기오로 올라가는 험난한 산길, 캐논 로드 중간쯤의 사자상이 있는 곳을 지나갈 무렵이었습니다. 갑자기 우리가 탄 지프니의 엔진 소리가 심상치 않아지더니 이내 멈춰 섰습니다.

 

지금 생각해도 참 아찔한 순간이었습니다.1989년이라는 시절, 처음 와본 낯선 나라의 가파른 밤 산길 위에서 차가 고장 난 것입니다.

 

 

우리는 잠시 쉬며 상황을 살핀 뒤, 결국 모두 내려 지프니를 뒤에서 밀기 시작했습니다. 한 사람이 밀고, 또 한 사람이 힘을 보태며 땀을 흘렸습니다. 그렇게 다 함께 힘을 모아 차를 몇 번 움직였을 때, 거짓말처럼 엔진이 다시 우렁차게 걸렸습니다.

 

그 순간 온몸으로 느꼈던 안도감은 수십 년이 지난 지금도 생생하게 남아 있습니다.

 

 

돌이켜보면 인생도 이와 같습니다.

가끔 예상치 못하게 멈춰 서는 순간이 찾아오지만, 곁에 있는 이들과 함께 힘을 모으면 결국 다시 앞으로 나아갈 수 있다는 것을 그날의 길 위에서 배웠습니다.

 

 

바기오, 새로운 시작의 장소

 

 

 

"그 고단하고 험난했던 과정을 거쳐 우리는 마침내 최종 목적지인 바기오에 도착했습니다."

마닐라에서 느꼈던 덥고 습한 공기와 달리, 산 정상에 위치한 바기오의 공기는 에어컨을 튼 것처럼 너무나 시원하고 쾌적했습니다. 그 시원한 바람은 마치 고생했다는 듯 나를 따뜻하게 품어주는 것 같았습니다.

 

 

 

그날 밤 내가 머물게 된 곳은 앞으로 공부를 이어갈 대학원의 게스트하우스였습니다.

 

김포공항에서의 긴장된 출발을 시작으로 마닐라공항의 통관 난관, 반가운 선배와의 만남, 입에 맞지 않던 첫 음식, 그리고 아찔했던 밤 산길을 지나 마침내 닿은 바기오까지 참 길고도 극적인 하루였습니다.

 

지금 돌아보면 그날의 여정은 단순히 공간을 이동한 과정이 아니었습니다. 한 청년이 새로운 세상의 문을 열고 들어가는 첫 번째 발걸음이었습니다.

 

그리고 그 험난한 길 위에서 맺은 인연과 경험들은 앞으로 내 인생의 역사를 채워갈 가장 소중한 밑거름이 되었습니다.

길은 단순히 목적지로 가기 위한 통로가 아닙니다. 그 길 위에서 만난 사람과 겪어낸 경험들이 쌓여, 비로소 한 사람의 위대한 역사가 완성되는 것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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